메모 향수 인레

​느무느무느무 여행이 가고 싶은 요즘. 다음 달엔 나아지겠지! 하는 긍정적인 사고를 세 달쯤 반복하다보니 이젠 대체 언제 잠잠해질지 끝을 알 수 없어서 그냥 다 됐고, 향수덕후다운 랜선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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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추천할 향수는 메모 향수 (Memo Paris) 인레 (Inlé). 메모 (Memo)는 클라라 몰로이와 그녀의 남편이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향으로 담아내는 브랜드이다. 한국에서는 작년 즈음부터 셀럽 누구가 사용한다는 식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유명해진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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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인레 (Inlé)는 이름 그대로 미얀마의 인레호수에서 영감을 받은 향수이다. 인레호수는 너무 관광지스럽지 않은, 평온한 여행지를 선호하는 여행자들이 꿈의 호수로 꼽는 곳인 동시에, 그만큼 미얀마에서 가장 상업적인 스팟이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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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클라라 몰로이의 영감을 자극했던 것은 이런 여행지의 생활감나는 현실이라기보단- 나무로 지어진 수상가옥을 배경으로 쪽배에서 독특한 어망을 던져 낚시를 하는 어부의 모습과 그 모든 삶의 흔적이 자욱한 안개에 덮여 몽환적인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풍경이었던 모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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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향수의 매력은 탑노트와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를 거치면서 조향사가 의도한 풍경을 공감할 수 있다는 데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세상 그렇게 정적이소 평화로울 수 없는, 서양에서 생각하는 ‘목가적인 오리엔탈리즘’을 연상시키는 인레호수의 이미지는 탑노트에서부터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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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향에 가깝지만 레몬만큼 시큼하진 않은 감귤류- 베르가못의 뉘앙스에 민트와 아르테미지아가 어우러졌다. 아르테미지아라고 하면 펜할리곤스 생각나고, 왠지 그리스 신화의 여신도 연상되지만 실상 아르테미지아는 쑥 계통이다보니 인레의 향기는 초록색과 쌉쌀한 상큼한 이미지의 첫인상으로 시작되었다. 빽빽하고 낮은 관목에 노랑 열매가 달려있는 안개낀 물가의 감각이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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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향수에서 느껴지는 보편적인 ‘달콤한 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달콤한 꽃냄새, 달콤한 과일 냄새 같은 것들. 하지만 메모 향수에서 풍기는 달콤한 향은 공통적으로 과일이나 꽃이 달달한 느낌이라기보단 향수를 사용한 사람의 체취가 스윗한 느낌에 가깝다. 플로럴한 계열의 바디제품으로 갓 씻고 나왔을 때, 체온과 어우러져 풍기는 깨끗하게 달콤한 살결의 향기같다 하면 적당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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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백리 밖에서 꽃보다 향기가 먼저 맞아주기로 유명한 계화(오스만투스)와 마테, 쟈스민이 자기 주장을 펼치는 메모 인레의 미들 노트가 딱 그렇다. ​처음 분사한 순간 느껴졌던 봄꽃같은 노랑의 이미지는 아무래도 베르가못에 오스만투스가 더해졌기 때문인 듯. 계화, 마테, 쟈스민의 공통점은 모두 차로 마실 수 있는 꽃이라는 데에 있다. 푸릇푸릇 연두색 투명한 꽃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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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향기 강한 꽃에 동남아 지역 향신료의 묘한 뉘앙스까지 더해졌는데도 한없이 여성스러운 플로럴 계열이 아니라 저어기 남쪽 나라 어딘가에 있는 자연친화적 리조트 조성된 정원 한 복판에 서있는 것 같은 향기로 표현된다. ​일부러 러프하게 손질한 나무로 만든 가구들과 라탄 소품, 에어컨 대신 높은 천장에서 커다란 팬이 천천히 돌아가서 정원의 습기도 향기도 고스란히 몸에 와 닿는 그런 시간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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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 노트는 삼나무와 머스크에 아이리스가 어우러진다. 상큼하게 시작해서 달콤해졌다가 우디와 스파이시의 중간쯤으로 수렴되기 때문에 메모 인레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운 살냄새에 가까워지는 기분. ​파우더리한 향과는 아주 멀고 먼 거리감이 있고… 굳이 분류하자면 플로럴한 계열. 인공미 돋보이는 화원이 아니라 일부러 꾸미지 않은 것처럼 계산하여 조성한 야생꽃 군락이라 하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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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인레가 신기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렴풋이 물이 연상되는 향기라는 것. ​물이 생각나는 향수라면 자연스럽게 마크제이콥스 레인을 떠올리게 되지만… 메모 인레는 비내리는 창문 사진 한가운데에 손글씨체로 오늘의 날짜가 적혀있는 것 같은 인스타 감성의 마크제이콥스 레인이 주는 물의 감각과는 완전히 다른 ‘안개낀 호수’의 차분한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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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랑이는 물소리조차 없이 고요하게 고인 호수에 물안개가 올라오는 새벽. 호숫가를 따라 빼곡히 자라난 노랗고 흰 꽃 향기가 바람을 타고 퍼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는 기분이다. ​꽃 향기와 과일 향과 나무 향의 저 아래에서 청각이 아닌 촉각으로 다가오는 물의 이미지가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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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향수들은 굳이 성별을 구분하여 쓰게 되진 않는 경향이지만 메모 인레 만큼은 남성 향수와 여성 향수로 구별하자면 고민없이 여성 향수 쪽에 놓아두게 되는 계열.대신 연령이나 취향에 큰 개인차 없이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수 있는, 모난 부분 없는 향수라 생각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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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지 않은 구성인데다 은은한 체향같은 뉘앙스가 오래 지속되는 향수라서 허공에 한 번 분사해 그대로 머리부터 레이어드하면 덥고 습한 여름에도 큰 무리없이 사용할 수 있더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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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것 하나는 대개 선물하기 좋고, 선물받으면 기분 좋은 계열이란 사실. 펜할리곤스 수집을 그만두기로 했더니 르라보에 꽂히고, 르라보 덕질을 잠시 쉬니 메모 향수가 취향을 저격하고 있어서 향수덕질은 휴덕도 없이 계속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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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 않은 언젠가- 인레호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엽서를 채운 뒤 메모 인레를 뿌려 내게 보내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랜선여행 포스팅을 마무리해 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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